2020년 11월 26일

구곡문화의 사회적 가치 검토

김 두 한 (문학박사)
Kim Du Han (Kim Du Han Ph.D. of Arts)

[예안신문] 구곡문화의 원형은 주자가 무의정사를 건립하고 무의구곡을 경영하면서 무의구곡가를 지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15세기 중엽 성리학과 함께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가 실학이 융 성한 영·정조 시대에 이르면 쇠퇴하게 된다. 이러한 구곡문화는 ‘구곡’과 ‘정사’와 ‘구곡가’, 그리고 ‘구 곡 길 거닐기’라는 네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요소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그 사회적 가치를 검토해본다. ‘구곡’은 이름을 붙이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자연이다. 신라의 화랑은 이 자연(명산대천)을 찾아다 나며 호연지기를 길렀고, 고려의 민초는 이 자연 속에 살면서 <청산별곡>이란 가요를 남겼으며, 조선의 많은 백성들은 한시나 시조, 가사 등으로 이것을 읊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 어져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고, 자연을 대상으로 한 시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자연은 앞으로도 영 원히 인간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따라서 이 자연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영구히 보존하 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정사’는 문화재이다. 그 자체로 역사성과 미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적 안목에서 보아 보존할 가 치가 있는 것을 가려 보존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라 하겠다. ‘구곡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주자의 무의구곡가를 수용할 때, 그것을 ‘산수시’로 받아 들인 경우와 문이재도(文以載道)의 관점에서 ‘입도차제(入道次第)’의 시로 받아들인 경우의 두 유형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퇴계가 전자, 우암이 후자의 대표 격이다. 김춘수는 이미지를 서술적 이미지(이미지 그 자체가 목적인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관념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쓰인 이미지)로 나누었는데, 이 구분을 따른다면 전자의 유형은 서술적 이미지로 된 시, 후자의 유형은 관념적 이미지로 된 시로 무의 구곡가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받아들여 읊어진 조선의 구곡가는 서술적 이미지로 이루어 김 두 한 (문학박사) Kim Du Han (Kim Du Han Ph.D. of Arts) 초록 Abstract 한국정신문화재단 | 115 The 21st Century Human Values Forum 2020 실천세션 Practice Session 진 것과 비유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것의 두 유형으로 나눠질 수 있다. 그런데 한국시는 박목월의 <청노루> 와 같은 서술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시의 단계를 지나 김춘수의 무의미시나 이승훈의 비대상시를 경험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리고 비유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구곡가에 내재한 의미는 실학의 등장과 함께 사양 길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구곡가를 오늘에 답습하는 것에 대한 문학사적 의의는 찾기 어려우며, 그 사회 적 가치 또한 그리 크지 않다 하겠다. ‘구곡 길 거닐기’는 현대인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가치가 인정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구곡’은 영원히 보존해야 할 자연환경이고, ‘정사’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가려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며, ‘구곡가’는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은 보존하되 현시점에서 그것은 답 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할 문학이고, ‘구곡 길 거닐기’는 현대인의 심신건 강에 유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구곡문화는 한 마디로 보존과 함께 창조적으로 거듭나야 할 문화라 하 겠는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구곡문화가 꽃을 피우던 당시에 그러했듯이 오늘 날에도 그러한 문화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위정자나 위정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의 밥을 먹고, 가장 가난한 사람의 옷을 입으 며, 가장 억압받는 사람의 삶을 살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연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할 때 이 시대가 요 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실현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